아름다운 민관협업, 고속도로 입양 (Adopt-a-Highway)

이 글은 제가 한국행정연구원 행정포커스 2018년 9-10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한국행정연구원에 양해를 얻어, 제 블로그에도 싣습니다. 기고한 원문을 PDF 파일로 보시려면, 위 첫문장의 링크를 클릭하셔서 한국행정연구원 웹사이트를 방문하시기 바라며, 웹브라우저에서 '바로보기'도 가능합니다.



(이렇게 많고 복잡한 도로를 관리하는 건 쉽지 않다.
/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곳
/ 출처: https://goo.gl/75MRJh
/ 원저작자: By Angelo DeSantis from Berkeley, US)

들어가며

1㎢당 인구, 즉 인구밀도는 우리나라가 515명인데, 미국은 30명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에 비해 미국의 인구는 6.3배인데, 면적은 98배나 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도로 총 길이는 665만 km로 우리나라의 62배이다. 이렇게 땅이 넓고 도로가 많으니, 미국 정부가 도로를 관리하는 게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지금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고에 머물고 있는데, 매일 출퇴근하며 주간고속도로 제5호선(I-5)을 이용한다. 운전하다 보면 오른쪽 도롯가에 ‘Adopt-a-Highway’라는 표지판이 자주 보인다. 우리말로는 ‘고속도로 입양’으로 번역할 수 있는데, 거기에는 회사, 식당, 친목단체 등의 이름이 있다. 정부가 관리하는 고속도로를 이들이 입양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어느 고속도로 입양 표지판, 출처: https://goo.gl/5vyQew)

미국의 고속도로

고속도로는 먼 거리를 빠른 속도로 가기 위한 것이다. 차량이 가다가 멈추는 일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속도로에는 일반적으로 신호등이 없고, 어떤 고속도로에서 그와 교차하는 다른 고속도로로 옮겨갈 때조차도 멈추지 않고 곡선 비탈길(Ramp)로 달릴 수 있도록 입체교차로(Interchange)가 설치된다. 미국에서는 신호등이 없는(Free of Signal) 고속도로를 프리웨이(Freeway)라고 한다.

미국의 주요 도로에는 국도(U.S. Route), 주간고속도로(Interstate Highway), 주도(State Route) 등이 있다. 이 가운데 국도는 1926년부터 번호 체계가 갖추어졌는데, 총길이가 25만 km이다. 1960년대에 모든 국도에 포장이 완료되었고, 고속도로가 아닌 구간도 일부 남아 있다.

주간고속도로는 1956년부터 건설한 자동차 전용도로이고, 총 길이는 7.8만 km이다. 모두프리웨이이고, 중앙분리대가 있고, 편도 2차로 이상인 것이 특징이다. 앞서 언급한 제5호선은 멕시코에서 캐나다까지 이어지고, 총 길이가 2,223 km나 된다. 필자의 출퇴근 구간에는직진차로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넓은 22개 차로도 있다.

주도는 주별로 관리되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의 경우 3백개 가까이 있고, 총 길이도 1.8만 km 가량 된다. 그 중 가장 긴 제1호선은 1,055 km이다. 캘리포니아 주 정부는 1990년대 이후 주도 중 프리웨이가 아닌 도로는 카운티 이하의 지방정부로 소관을 넘기고 있다.

(국도
/ 출처: https://goo.gl/65Lftt)
(주간고속도로
/ 출처: https://goo.gl/ecUCQC)
(주도
/ 출처: https://goo.gl/eSwFS1)

고속도로 쓰레기 문제

쓰레기를 아무데나 무단으로 버리는 사람을 가리켜 미국에서는 ‘쓰레기 벌레’(Litterbug)라고도 부르는데, 도로 관리를 맡은 정부에게 큰 골칫거리다. 운전하며 보면 도롯가에 버려진 나무판자나 타이어, 비닐포대 등이 보이곤 한다. 가벼운 종이나 비닐이 바람에 날리면 운전자 시야를 가려서 대형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미국 고속도로에는 가로등이 거의 없어, 특히 밤에는 갓길에 버려진 가전제품 같은 쓰레기로 인해 큰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

미국자동차협회 교통안전재단(AAA Foundation of Traffic Safety)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도로에 떨어진 파편이나 잔해로 인해 미국 전역에서 20만 건이 넘는 교통사고가 발생했고, 이 가운데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사고가 다수라고 밝혔다.

정부는 도로 위나 도롯가에 떨어졌거나 버려진 것을 치우기 위해 매년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 교통국에 따르면 2015년에 고속도로에서 쓰레기를 약 2,000 입방미터 넘게 수거했고, 이를 처리하는 데만 800억 원 넘는 비용을 지출했다. 그런데 이 비용은 ‘고속도로 입양’ 덕분에 줄어든 결과라고 한다. 지금부터는 이 고속도로 입양이 무엇이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했는지 알아보자.

(출처: https://goo.gl/qryuc2)

텍사스 주에서 시작한 고속도로 입양

1980년대 중반 텍사스 주 교통국에 바비 에반스(J. R. “Bobby” Evans)라는 엔지니어가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당시 도로의 쓰레기와 청소 비용이 매년 늘어나는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다. 어느 날 운전하다가 어느 트럭 짐칸에서 파편이 도로로 튀는 것을 보았다. 여기서 그는 긴 고속도로를 구간으로 나누어서 자원봉사단체들이 하나씩 맡아 도롯가를 청소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오른쪽이 바비 에반스 / 출처: https://goo.gl/6jrULL)

이 아이디어를 들은 교통국 소속 공보관이던 빌리 블랙(Billy Black)은 구체적인 운영 방식을 고안했다. 청소에 참여하는 단체의 회원들에게 교통국은 안전조끼와 쓰레기봉투를 지급하고, 안전교육도 실시하기로 했다. 분기별로 한 번 이상, 한 해에 네 번 이상은 청소하는 조건도 만들었다. 이렇게 고속도로의 일부 구간의 청소를 맡는 것에 ‘고속도로 입양(Adopt-a-Highway)’이란 이름이 붙었다. 각 구간마다 어느 단체가 입양했는지 보여주는 표지판도 세우기로 했다.

이런 준비를 거쳐서 마침내 1985년 3월 9일에 타일러 시비탄 클럽(Tyler Civitan Club)이란 단체가 텍사스 주를 지나가는 국도 제69호선(U.S. Route 69) 중 2마일 즉 3.2 km를 입양한 것이 최초였다. 이후 이 캠페인은 지역단체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냈다. 주 정부의 예산 절감에도 크게 기여하는 등 매우 효과가 좋다고 판명되어 이 캠페인은 계속되고 있다. 텍사스 주에서는 현재 2년 단위로 허가를 갱신하고, 주간고속도로는 입양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2016년에는 6,368 km가 입양되었고, 34,191명이 참여하여, 쓰레기 680톤을 수거했다. 1985년 이후 지금까지 3,800여 단체가 참여했고, 이 캠페인 덕분에 주 정부는 청소비를 한해 30억 원 넘게 아끼고 있다.

(최초로 입양된 고속도로 / 출처: https://goo.gl/ajMrCz)

청소대행 서비스와 후원방식의 출현

‘Adopt-a-Highway’ 표지판을 보면서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자원봉사단체가 고속도로를 입양하여 청소함으로써 지역사회에 기여한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보다 20년 전에 린든 존슨 대통령은 고속도로 길가에 광고판을 설치하는 것을 제한하고자 했고, 그의 주도로 1965년 고속도로 미화법(Highway Beautification Act)이 제정되었다. 이렇게 고속도로 길가에 광고판 설치가 제한되었는데, 예외적으로 이 표지판은 허용되었다. 다만 이 표지판에는 전화번호나 홍보 문구는 넣지 못하는 제약은 있었다. 하지만 이 표지판이 홍보효과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입양에 참여하는 회사나 가게가 늘어났다.

(어느 식당이 입양에 참여했다.)

캘리포니아 주가 이 캠페인을 도입한 첫해인 1989년에 어느 마케팅 회사를 경영하던 테릴 마샤(Teryl Macia)도 홍보효과를 목적으로 일부 구간을 입양했다. 하지만 청소할 여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대신 청소할 사람을 물색하던 중, 비슷한 처지에 있는 회사들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청소대행 서비스 사업을 시작했다.

이처럼 청소는 대행업체에 맡기고 비용만 대는 방식이 생겼는데, 이를 구분해서 ‘Sponsor-a-Highway’ 즉 ‘고속도로 후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제 전문업체에 비용만 지불하면 청소를 대행해 준다고 하니, 회원이 적은 단체는 물론 개인도 입양에 참여할 수 있게 되어,  입양이 더욱 활발해졌다.

이 캠페인은 현재 미국 50개 주 가운데 49개 주에서 시행되고 있다. 일부 주에서는 고속도로만이 아니라 일반도로 입양(Adopt-a-Road), 바다나 강의 모래사장 입양(Adopt-a-Beach)과 협곡 입양(Adopt-a-Canyon), 공항 입양(Adopt-a-Airport) 등도 운영하고 있다. 입양 구역의 특성이나 입양 단체의 종류에 따라 의무적으로 청소해야 하는 횟수 등을 다르게 설계하기도 했다. 필자가 있는 캘리포니아 주는 고속도로 입양을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캘리포니아 주의 고속도로 입양 안내 브로셔 / 출처: https://goo.gl/LLAH38)

캘리포니아 주의 운영 사례

캘리포니아 주 교통국은 주 전체를 12개 구역(District)으로 나누고, 구역별 사무소를 두고 있다. 구역별로 고속도로 입양을 담당하는 조정자(Coordinator)를 지정했다. 입양하려는 개인이나 단체 즉 입양자는 신청서를 작성하여 온라인 또는 오프라인으로 조정자에게 신청하는데, 이때 직접 청소하는 자원입양(Volunteering adoption) 또는 청소대행 업체로 하여금 청소하게 하고 비용을 대는 후원입양(Sponsored adoption) 중에서 선택한다.

(고속도로를 입양한 자원봉사단체 / 출처: https://goo.gl/ajMrCz)

입양 허가는 일반적으로 2마일 단위로 구간을 나누어서 하고, 5년간 유지되며, 수수료(Fee)는 없다. 교통국은 표지판(Recognition panal)과 푯말을 제작하여 해당 구간에 설치하는데, 그 비용은 교통국이 부담한다. 다만 입양자가 표준형태인 검정색 글자가 아닌 여러 색깔로 된 이름을 원한다면, 그 글자에 따른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허가가 나면 입양자는 30일 이내에 첫 번째 청소를 해야 하고, 이후 한 해에 네 번 이상은 청소해야 한다. 청소에는 21세 이상인 사람이 지도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16세 이상인 사람이 참여할 수 있다. 교통국은 자원입양자에게 쓰레기봉투와 안전장비를 제공하고, 안전 교육을 실시하며, 청소 후에 나온 쓰레기도 수거해간다.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1989년 이후 최근까지 12만 명이 넘는 주민들이 이 캠페인에 참여했
고, 입양된 도로 구간의 총 길이는 15만 마일 즉 24만 km가 넘는다.

아래의 지도는 필자가 머물고 있는 샌디에고 지역의 입양 현황을 보여준다. 파란색은 현재 입양된 구간임을, 초록색은 입양을 원하면 고를 수 있는 구간임을 보여주는데, 대부분 입양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다만 고속도로 입양이 얼마나 활발한지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샌디에고 지역의 고속도로 입양 현황 / 출처: https://goo.gl/XAborA)

맺으며

정부가 할 일인데 민간에 맡기는 방식으로는 민간위탁(Contracting-Out)이나 아웃소싱(Oursourcing) 등이 있다. 예를 들어 정부가 민간에 교도소 운영이나 체납징수를 맡기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이 과연 적절한지, 그리고 비용 대비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 논란도 있다. 이 글에서 본 입양은 정부가 할 일을 민간이 한다는 점에서 얼핏 민간위탁이나 아웃소싱과 비슷해 보일 수 있다.

어떤 운전자가 고속도로에서 쓰레기를 발견하고 사고를 유발할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여 주 정부에 신고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 구간이 입양되었다고 하더라도, 입양 표지판에는 입양한 단체의 연락처가 없기 때문에 정부에 연락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그 단체에게 청소하라고 지시하거나 쓰레기를 방치한 책임을 묻지 않고, 직접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도롯가를 제외하고 중앙분리대나 차로에 떨어진 파편이나 잔해는 애당초 입양 대상도 아니고, 정부가 언제나 관리 책임을 지고 청소하고 있다.

따라서 고속도로 입양에 대해 ‘정부가 민간에 고속도로 청소를 맡겼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입양한 단체나 청소대행 업체가 분기별로 청소를 한다고 해서, 청소가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분기별 한 번은 자원봉사단체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고, 정부는 연중 관리해야 한다. 다만 정부의 청소 예산을 일부 아끼는 효과는 있겠다.

이 캠페인에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자원봉사단체 회원으로 청소에 참여한 경험이 있거나, 자신이 속한 회사 이름이 표지판에 붙어 있는 것을 자랑스러워한 사람이라면, 고속도로에 쓰레기를 무단으로 버리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더 많은 주민들이 입양을 통한 고속도로 청소에 참여할수록 고속도로에 버려지는 쓰레기의 양은 그만큼 더 줄어들 것이다. 이런 입양 방식이 가지는 가장 큰 의미는 주민들의 행정참여를 통해 시민의식이 높아지는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고속도로를 입양한 자원봉사단체 / 출처: https://goo.gl/ajMrCz)

우리나라 사례: 평택시의 도로 입양과 행복홀씨 입양사업

이 방식은 우리나라에도 들어왔고, 이미 여러 지자체가 하고 있다. 아래는 경기도 평택시의 사례인데, 출처는 주로 평택시 웹사이트이다.

2010년 9월 14일 경기도 평택시는 관내 10개 단체와 ‘도로입양사업 공동협약식’을 체결했다. 협약에 참여한 단체는 고속도로 2~3㎞ 정도의 구간을 맡아서 도로변의 쓰레기 수거, 제초, 화단 조성, 불법 광고물 제거 등의 활동을 한 해에 4회 이상 실시하고, 평택시는 사업의 장갑, 집게, 봉투 등의 청소용품과 재해보장보험을 지원하는 내용이었다. 이 캠페인은 계속 이어져, 2017년에는 77개 단체, 2,660명이 참여하고 있고, 100km가 넘는 도로를 입양하여 청소하고 있다.

2015년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는 공원, 지역명소 등의 일정 구역 또는 구간을 주민이나 단체가 입양하여 자율적으로 쓰레기를 청소하거나 꽃밭을 조성하는 등의 활동을 하도록 장려하기 위해 ‘행복홀씨 입양사업’이란 이름으로 캠페인을 시작했다. 평택시에서는 현재 90개 단체가 총 109㎢ 면적을 입양하였고, 회원 14,344명이 환경정화와 꽃가꾸기 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 참고자료



※ 제가 이 글을 쓰면서 얻은 것은 제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인데, 막상 글로 쓰다보니 그것이 새롭게 보이는 경험입니다. 아래 내용은 위 기고문의 '맺으며'에 거의 나오는데, 아래는 시간 순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1. 처음에는 '고속도로 입양'을 보면서, 정부가 할 일인데 민간에 맡기는 방식으로는 민간위탁(Contracting-Out)이나 아웃소싱(Oursourcing)이라 생각했습니다. 교도소 운영이나 체납징수를 민간 기관에 맡기는 것처럼요.
     
  2. 그러나 고속도로 입양에 대해 ‘정부가 민간에 고속도로 청소를 맡겼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실제로 민간이 하는 청소는 매우 가끔이고, 쓰레기로 인한 모든 책임은 정부가 집니다. 정부의 청소 예산을 일부 아끼는 효과는 있을 겁니다.
     
  3. 지금은 이 캠페인이 가지는 의미는 주민들의 행정참여라고 생각합니다. 자원봉사단체 회원으로 청소에 참여한 경험이 있거나, 자신이 속한 회사 이름이 표지판에 붙어 있는 것을 자랑스러워한 사람이라면, 고속도로에 쓰레기를 무단으로 버리는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댓글